yuna's travelog


어제 저녁엔 우박이 섞인 비가 엄청나게 쏟아져서 물에 젖은 생쥐 꼴로 펜션에 돌아갔는데, 오늘 아침엔 해가 쨍쨍 내리쬔다. 뮌헨은 알프스 산맥 근처에 위치한 도시라 낮에 해가 나면 덥고 밤에는 무지 춥다. 펜션은 열한시에 체크아웃, 예약한 호텔은 세시에 체크인이어서 다시 중앙역의 코인라커에 짐을 넣고 친구가 쓸 렌즈를 사러 갔다.


쌀쌀한 뮌헨의 아침

길가다 눈에 띈 포스터. 북한 깃발 같아서 자세히 보니
평양에서 온 윤이상 앙상블이 연주하는
'조선 인민공화국의 새로운 음악' 콘서트
(라고 쓴 것 같다. 더이상은 모른다 -_-;)


사진 관련 대형 쇼핑몰 자우터(Sauter)

처음엔 중앙역의 작은 카메라 가게를 찾아갔으나, 물건이 별로 없었다. 주인 아저씨는 자우터라는 곳을 찾아가보라고 하며 내가 가진 지도에 표시를 해주었다.


중앙역에서 한 정거장 거리인 젠틀링거 토르(Sendlinger Tor) 역에 내려서
존넨 가(Sonnen str.)로.

이곳이 바로 자우터

로모 진열대. 액션 샘플러, 사이버 샘플러, 수퍼 샘플러

1~2층으로 나뉜 이 대형 매장에는 사진에 관련된 모든 것이 있다. 필름, 카메라, 렌즈, 카메라 가방, 삼각대, 사진 관련 서적들, 하다못해 필름에 마크하는 펜까지!(그 외에 뭣에 쓰는 물건인지 전문가가 아닌 나로서는 알 수 없는 것들 즐비...) 하지만 친구 신용카드의 해외 이용 한도가 넘어서 렌즈를 사지 못했다. 워낙 비싸기도 했고, 내 카드를 두개 다 소매치기 당해서 모든 비용을 친구 카드로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말하자면 그 망할 놈의 검색 엔진들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돈이 없다. 시골로 간다

실망하고 기운이 빠져서, 근처 카페에서 뮌헨에 오면서부터 계속 눈에 띄었던 (뮌헨의 명물) 딸기 파이를 하나 먹어주었다 :=) 쓴 돈 계산을 해보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생각했다. 뮌헨이라는 대도시는 내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데다, 물가가 너무 비싸다. 지금까지 쓴 비용을 계산해보니 벌써 여행 비용으로 잡았던 최소 금액을 다 써버렸다. 스위스는 물가가 더 비쌀텐데... 이런 관광지나 대도시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시골의 작은 마을로 내려가고 싶었다. 사실 독일은 나중에 추가된 나라라서 특별한 계획도, 꼭 봐야만 할 무엇도, 조사해온 자료도 없으니 별로 아쉬울 것도 없고.

청기사파의 그림들을 소장하고 있는 렌바흐하우스(Lenbachhaus)에 갔으나 월요일이라 열지 않았다. 이 갤러리는 중앙역에서 한 정거장 거리인 쾨니히스플라츠(Konigsplats) 역에 연결되어 있고, 지하의 쿤스트바우(Kunstbau) 전시장과 같이 운영되고 있다. 쿤스트바우에서는 현재 피카소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내일은 뮌헨을 떠나려고 했지만 아무래도 놓치고 싶지 않은 전시회라 고민중.


쾨니히스플라츠 역에 붙은 렌바흐 가의 사람들(섬찟;;)과 렌바흐하우스 정원

저 오른쪽에 있는 것은 청기사파 화가인
야블렌스키(Alexej von Jawlensky)의 <Portrait of the Dancer A> (1909).

뮌헨에 예약한 호텔 게르마니아(Germania)에 체크인했다. 물가가 비싸서 그런지 다른 도시 호텔들보다 훨씬 질이 낮다. 지저분하진 않지만 낡고 좁다.

벌써 18일째. 아침만 해도 이제 돌아갈 날이 가까워 온다고 생각하니 아쉬웠는데, 나중엔 다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지 않았다. 더러운 숙소, 모자라는 여비, 피곤한 몸,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일찌감치 씻고 그동안 밀린 빨래를 해치우고 다음 일정을 짠 후 푹 쉬기로 했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서머타임이 시작되어서 아홉시가 다 돼도 환하다. 노트북에 담아온 옛날 사진들을 뒤지다가 가족이 연초에 모여 찍은 동영상을 찾았다. 주인공은 물론 조카 수민이지만. 오래 여행을 다녀도 외롭다든가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혼자 킥킥대면서 그 동영상들을 보고 있자니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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