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travelog


비엔나는 예술적 영감으로 가득한 도시다.
이전 어느 책에도 읽었듯, 백년 전 비엔나는 "세계 문명의 중심에 선 도시의 하나"였으며, "19세기 말 문명의 지적 실리콘 밸리 같은 곳"이었다.
부다페스트나 프라하에선 작고 아름다운 도시 그 자체에 감동했고, 독일에서는 그 안의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많은 걸 겪었던 데 반해, 밝은 햇살, 깨끗한 물과 공기의 도시 비엔나에서는 19~20세기를 풍미한 많은 예술가들의 숨결 덕에, 가는 곳마다 머리와 가슴이 파릇파릇 살아 숨쉬었다.
행복했다 :-)



19세기 중반 오스트리아 인상파 전시회


벨베데르 궁전의 오스트리아 갤러리(www.belvedere.at)에서는 19세기 중반 오스트리아 인상파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바로 지금, 초봄 오스트리아의 깨끗한 공기와 눈부신 햇살이 비엔나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누군가 시간이 지나가는 것이 신비롭고 자연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나이가 든거라더니, 내가 그렇다. 이전에는 이해하지 못했을 많은 것들이 가슴 속에 와닿는다.)


인상파 화가들은 자연광에 의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다이내믹한 모습을 잡아내야 했으므로 실외에서의 작업을 주로 했다. 전시회의 입구에는 오스트리아 인상파의 대표 인물인 여류화가 티나 블라우(1847 - 1916)가 노구에 조그만 페인팅 카트를 끌고 비엔나의 프라터 유원지를 걸어가는 커다란 흑백 사진이 걸려있다.


그 외에도 이 갤러리에는 모네, 마네, 르느와르 등 프랑스 인상파 작가의 작품들과 고흐의 그림도 몇점 있긴 하지만, 오스트리아 갤러리인 만큼 다른나라 유명 화가들의 2~3류급 작품들보다는 오스트리아 화가들의 dedicated works들이 훨씬 뛰어난 영감을 전해준다.






이 외에도 나무, 강, 어둠, 그림자, 조각배 등이 그려져 있었던 카알 몰(Carl Moll)의 "Dusk"(1900년 이전)나, 뭉크의 "Birch Grove in Evening Light", 클림트의 "Longing For Happiness" 등등 마음에 드는 작품들이 많았지만, 생각과는 달리 돌아와서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도 찾을 수가 없었다.


미술사박물관 샵과 벨베데르의 오스트리아 갤러리 모두 대부분의 작품들을 슬라이드 필름으로 판매하며, 가격은 하나에 1유로 정도이다. 아쉽게도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 많았던 레오폴트 뮤지엄에서는 슬라이드를 판매하지 않았다.





여행자 수표 바꾸러 삼만리


대부분의 여행 안내 책자에서는 여행자 수표가 안전하고 편리하다고 적극 권장하고 있고, 한국에서 환전할때 여행자 수표를 수수료 없이 현금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하지만, 와보니 그게 아니다. 비엔나는 여행자 수표 수수료가 장난이 아닌것!
어제에 이어 여행자 수표를 바꾸러 여기저기를 전전긍긍하며 돌아다녀야 했다.
케른트너 거리에선 여권이 없어서 현금으로 못바꿨는데, 숙소 근처의 Erste 은행에 가니 자기네는 수수료가 비싸다고 수수료가 싼 오스트리아 은행으로 가라고 한다. 그러나 웬걸! 로이만플라츠의 오스트리아 은행에 갔더니 50유로 바꾸는데 수수료가 12유로란다(이게 싼거면 비싼건 도대체 얼마냐).
남역으로 갔다.
남역의 환전소에선 금액과 관계없이 한번 현금화하는데 6유로를 받는다. 그런데 싸인이 미리 되어있다고(이전에 은행에서 바꿔줄 줄 알고 싸인을 했었다. 어쩌라고!) 여행자수표 발급 영수증을 가져오라고 한다.
결국은... 카드로 돈 뽑았다 ㅠ.ㅠ



비엔나의 한가로운 금요일 밤


저녁 8:20
써머타임으로 이곳은 벌써 낮이 무척 길다. 여덟시쯤 되어야 컴컴해지기 시작하는데, 맑았던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번개와 천둥이 치고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한다.
나는 이런 날씨가 좋다. 비가 몰려오기 전의 갑작스런 공기의 변화와 미묘한 냄새, 그리고 바람, 뒤이어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들...


금요일이다. 한국에서였으면 아마 일주일의 일을 정리하고 개운하게(혹은 다음주에 낼 시안 걱정을 하면서) 맥주 한 캔을 앞에 두고 블로깅을 하고 있거나, 혹은 친구나 회사 동료들과 술한잔을 하고 있겠지. 어쨌거나 술이 없는 금요일은 웬지 어색한 법이니...
비인의 한가로운 금요일 밤. 밥통에서는 한국 쌀이 익어가는 가운데, 아침에 사온 맥주와 멜론을 먹는다. 김치 볶음밥을 하려고 하는 중인데 재료가 별로 없다. 김치랑 참치, 아침에 샌드위치 하고 남은 햄과 구멍뚫린 치즈, 그리고 기름.
그래도 꽤 맛있게 됐다. 맥주를 더마시고 싶지만 여긴 24시간 편의점 같은 것이 없어서 여섯시 반이 넘으면 끝이다. 끝.


저녁의 수다


아파트먼트의 주인 아주머니(말이 아주머니지 사실 20대 후반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외모와 활기의 소유자!)가 체크아웃할 시간을 알아보러 들르셨다. 큰 빨래를 어떻게 하나 고민이었는데 아주머니네 집 1층에 있는 빨래방에서 직접 해다 주시기로 했고, 한참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둘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행을 오게 된 경위, 여행 중 보고 들은 것들, 힘들었던 일들, 그리고 아주머니의 여행 이야기와 가족 이야기...


아주머니는 아프리카에서 간호사로 일하다가 오스트리아 사람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셨다. 여러 곳을 많이 여행하셨고 게다가 전공이 전공인지라, 여행중의 건강에 관해 조언도 해주셨다.
힘들었던 마음은 편안해졌고, 꿋꿋이 여행을 계속할 용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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