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travelog


새벽의 뮌헨 중앙역

일요일 아침 여섯시 25분, 뮌헨의 중앙역(Hauptbahnhof)에 도착했다(밤 기차일 경우엔 승무원 아저씨가 유레일 패스를 갖고 있다가 아침에 뮌헨에 도착하기 25분 전에 깨워주면서 다시 준다). 어제 밤에는 기차에서 대충 세수만 하고 잤는데, 부시시 떡진 머리를 두건으로 슬쩍 감싸주고 눈꼽을 떼고는 기차에서 내렸다. 이러고 하루 종일 돌아다녔다.

버거킹의 새벽 커피로 잠을 깨운다. 아침 여섯시 반의 뮌헨 중앙역 버거킹엔 꾸벅꾸벅 조는 아줌마, 프라하에서처럼 손님들이 남기는 음식을 기다리는 거지, 그리고 나같은 동양인들에게 '치나, 치나' 하고 외치는 양아치 쒜리들이 있다(잠도 안자냐).

부다페스트, 프라하에 비해 뮌헨의 물가는 많이 비싼 것 같다. 중앙역의 코인라커에 큰 짐을 넣고 민박을 구하려고 전화를 했는데 한국 민박은 한군데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안내 책자에 나온 호스텔이나 펜션들은 모두 프라하보다 두배는 비쌌다. 새벽이라 안받나 하고, 일단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뮌헨 관광의 중심인 마리엔 광장의 프라우엔(Frauen) 성당으로 향했다.


프라우엔 성당의 장엄하고 감동적인 미사

독일인들이 합리적이고 원칙에 철저한 사람들이라는 것은 그들의 언어에서도 알 수 있다. 독일어에는 발음상이나 문법상의 예외가 거의 없다. 그리고 새로운 어휘가 필요할때 기존의 낱말과 낱말을 합해 합성어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경제적이다. 고등학교 때 배운 독일어로도 여기서 얼마간 글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뮌헨은 어딜 가도 영어가 별로 없다. 역에도, 은행에도, 식당에도...). 프라우엔 성당 역시 화려하고 자잘한 장식보다는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장대함이 돋보인다.


프라우엔 성당 내부

미사 시작을 기다리고 계신 수녀님.

프라우엔 성당의 미사 역시 지금까지의 어떤 미사보다도 철저히 격식을 갖추었다. 2층 뒤쪽에는 성가대와 올갠 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가 있어서 성가 반주와 연주를 했고, 미사의 시작에 사제단이 성당을 돌며 향을 뿌리는 것부터(이것을 뭐라 하는지 사이비 신자인 나로서는 알 수가 없음), 모든 것이 완벽한 격식을 갖추어 진행되었다(이 역시 완벽한 격식인지 알 수 없으나 그렇게 사료됨 -_-). 미사, 성가, 연주 모두 매우 아름답고 장엄했으며 감동적이었다.


독일 지하철

미사 후 1일권을 끊어 지하철을 타려는데, 이곳 지하철은 참으로 희한하게도 한 선로에서 앞으로도 가고 뒤로도 가고 그러는 것이 아닌가(나중에 알고보니 이 역만 그렇다)! 게다가 어떤 역에서는 왼쪽 문이 열리길래 오른쪽 문 옆에 무심히 기대어 있었는데, 오른쪽 문도 같이 열렸다 :-O 어찌나 황당한지. 뚜벅이로서 지하철 생활 몇년 만에 지하철 문이 양쪽 다 열리는 경우는 내 생전 처음 보았고, 그 이후로도 못봤다.
뮌헨의 지하철과 지하철 에스컬레이터는 조용하고 정말 느렸다. 비인과 프라하의 초고속 에스컬레이터에서 몇번이나 넘어질 뻔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뮌헨 지하철 노선(사실 이건 나중에 노선도 필요할때 찾아보려고 찍어둔 것)

디자인도 훌륭할 뿐더러 실용적인(그렇게 보이는) 지하철 휴지통


싼 숙소를 구하다

정오가 넘어서도 한국인 민박이 모두 전화를 받지 않아서, 여행 안내 책자 두권을 뒤져서 제일 싼 숙소 몇군데에 전화를 했는데 모두 비슷하게 비쌌다. 친구와 나 둘다 소매치기를 당한 터라 현금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마지막으로 쉬반탈러(Schwanthaler) 거리에 있다는 호텔 쿠르팔(Hotel Kurpfal)이라는 곳에 전화를 걸었다.

쿠르팔 : 호텔 쿠르팔입니다.
나 : 하이, 더블 룸 하나 있어요? 얼마예요?
쿠르팔 : 네. 00유로입니다.
나 : 네(쳇, 비싸쟎아)... 생각 좀 해보고 다시 전화할께요.
쿠르팔 : (다급한 목소리로) "student sunday rate"을 적용해서(아니 이런 것도 있나 -_-) 2유로 깎아드릴께요!
나 : 아, 그런 것도 있어요? 근데 저희는 학생이 아닌데요.
쿠르팔 : 노 프라블럼! 택시 타고 오세요. 택시비도 줄께요!

손님이 별로 없나보다. 택시비는 됐다고 거절하고, 못찾으면 다시 전화한다고 하고는 지도를 보고 쉬반탈러 거리를 찾아 짐을 모두 들고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쌍한 쿠르팔 아저씨... 우리는 결국 그곳에 가지 않았다. 가는 길에 쉬반탈러 거리에 있는 펜션 야스민(Pension Jasmine)이라고 써있는 허름한 건물이 있길래 가격이나 물어보자고 들어갔는데, 다른 데보다 10유로가 싸다. 물론 샤워 시설이 있는 방은 다른 데와 비슷했다. 실망하고 다시 가려다가 혹시나 해서 물어보니 공동 화장실과 샤워실을 쓸 수 있다고 했다. 화장실에서 냄새가 좀 났고 샤워실도 그리 깨끗하진 않았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TV 라운지(라기보다는 TV가 있는 곳 -_-)

싸구려 2인실.
방 안에는 커다란 세면대도 있어서
세수나 이를 닦는 것은 방 안에서도 할 수 있었다.

프라하의 노박 아저씨네 집(거긴 가격은 절반인데 여기보다 훨씬 깨끗했다)에서 지저분하다며 이불도 안덮고 침대 한구석에서 쭈그리고 잤던 친구도, 싸게 방을 구했다고 좋아했다(그렇게 쉽게 현실과 타협하다니!). 게다가 내일 묵으려고 예약한 호텔 위치를 보니 바로 50미터쯤 옆. 중앙역 정문에서 오른쪽 길인 바이에른 거리(Bayern str.)와 그 다음 길인 쉬반탈러 거리에는 이런 소규모의 호텔과 펜션들이 즐비하다.


피나코테크(Pinakothek)

짐을 놓아두고 최초의 미술관이라는 피나코테크(Neue Pinakothek)로 향했다. 피나코테크는 중앙역에서 지하철 U-bahn으로 두정거장 거리인 테레지엔 가(Theresien str.) 역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있다. 19세기 초에 처음 생긴 피나코테크는 알테, 노이에, 모데른의 세개 건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내가 보러간 것은 18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의 방대한 미술품을 보유한 노이에 피나코테크. 일요일이라 무료 입장이었고 사람들이 많았으며, 노이에는 며칠 후 있을 특별전을 위해 한두개의 방이 닫혀 있었다.


노이에 피나코테크 앞.
* 이게 날뛰는 말(혹은 소?)의 등에 탄 카우보이라는 것을
방금 전에야 깨달았다. -_-;

리플렛에 나온 대로 방 번호(1~22번)를 따라가며 보다 보면, 18세기 중반 묘사 위주의 회화에서부터 인상주의, 상징주의 등, 그림이 점점 묘사를 벗어나고 화가의 생각과 감성이 그림에 이입되기 시작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다음은 마음에 들어 적어두었던 몇몇 작품들. 모아놓고 보니 코로, 쿠르베 등을 지나 드라클루아, 도미에, 가브리엘 폰 막스, 그리고 로트렉과 고흐까지, 거의 인물화(그것도 웬지 음침한) 위주가 되어버렸다.

이후 르느와르, 드가, 로트렉이 나오고, 주제 이외의 디테일을 생략한 마네의 초기작과 5~6년 후 완전히 디테일이 사라져버린 후기작에서 이렇게 "그림이 묘사를 벗어나는 과정"을 생생히 볼 수 있다. 희미해지는 윤곽, 격렬해지는 붓질, 번득이는 색상... 모리스 드니(Maurice Denis)의 "Summer's bay on the..."에서는 완전한 색상의 혁명이 일어난다. 그 외에 코코슈카(Oskar Kokoschka)의 광기어린 그림들과 모네의 '수련(Water-lilies)' 중 1915년작도 있다.


레오폴트 거리

피나코테크의 정원에서 조금 쉬고 '쉬바빙의 젊음의 거리'라는 레오폴트 거리(Leopold str.)를 향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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