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travelog


줄인형 스페이즐씨를 찾아

전에 산 귀여운 스페이즐씨가 나오는 인형극을 보려고 몰다우 강을 건너 Dejvicka 거리에 있는 스페이즐과 후르비네크 마리오네트 극장(Spajbl and Hurvinek Marionette Theater)을 찾아간다.

* 왼쪽 오른쪽 화살표를 누르면 다른 사진도 볼 수 있습니다.


Be Good to Travellers

아쉽게 발길을 돌려 프라하 성으로 향했다. 나침반과 지도, 그리고 여행 안내 책자를 대조하며 다시 길을 찾아간다. 가이드 없이 여행하는 경우 이렇게 길을 찾아가기는 사실 힘들다. 게다가 글자를 모르는 나라에서란 :-(
이럴 때는 지나가는 모든 현지인들이 가이드!
여행 안내 책자에는 프라하 사람들이 대개 영어를 못한다고 나와있지만 그렇진 않다. 젊은 사람들, 특히 관광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필요한 영어를 잘 구사하고, 그리고 대개 친절하다.

낯선 곳으로 길을 떠나온 사람들은 조그만 친절에도 큰 힘을 얻고, 조그만 불친절에도 상처를 받기 쉽다. 길을 떠나온 사람들에게 친절할 것, 웃으면서 따뜻하게 대해줄 것, 최선을 다해 도와주려고 노력할 것. 이것은 인간(길 위에 있는 자)이 또다른 인간(길을 떠나온 자)에게 할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이며, 인간에 대한 예의이다.



4차원의 입구, 매혹의 골목길들

여행 떠난 후 지금까지 걸은 거리만 합하자면 아마 서울에서 강릉까지는 갔을 것 같다. 프라하는 지금까지 걸었던 어느 도시보다도 더 많은 골목길이 있다. 그 수십개의 골목들이 불규칙하게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걸어다니다 보면 어느샌가 모르는 골목에 와있고, 또 어느샌가는 어제 왔던 골목에 다시 와 있다. 인적이 드문 골목길은 마치 4차원의 세계로 통하는 비밀스런 입구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소피가 하울을 처음 만났던, 병정들이 있던 그 골목길을 보면서 프라하 구시가의 골목길을 떠올렸었다. 물론 프라하 라고는 안나오지만.

게다가 이 작은 도시 프라하의 골목들에는 작은 놀라움들이 숨겨져 있다. 구석구석에 수많은 아트샵들과 인형가게들, 서점들이 있는데 각각의 아트샵들이 모두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고 전시품의 수준도 높다. 서점 역시 탐나는 디자인, 사진, 순수예술 관련 서적들로 가득하고, 서점마다 각기 다른 테마를 가지고 있다.

관광객들로 먹고 사는 도시라 가능한 것일까! 비인이 대규모의 유명갤러리와 박물관, 오페라 하우스를 보유한 영감의 도시라면, 프라하는 작은 단위의 매혹적인 갤러리와 서점, 샵들로 넘쳐나는 도시이다. 물론 둘다 매혹적이지만, 나로 말하자면 후자를 더 선호하는 편이다. 이곳에 두달쯤 살았으면... 매일 이렇게 산책하고, 감탄하고, 피곤하면 아무 바에나 들어가 맥주를 마시고, 덧없이 왔다 덧없이 가는 관광객들을 구경하고, 아무 근심없이 이렇게 두달만 살았으면....


프라하 성과 비투스 성당

프라하 성을 걸어서 한바퀴 돌았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 햇살에 빛나던 엄청난 크기와 높이의 비투스 성당. 지금까지 여러 성당들을 보았지만 별 감흥이 없었는데 이곳은 감동 그 자체였다.



오늘은 너무 늦어서 비투스 성당 안에 들어가 보지 못했다. 바깥이 저런데 안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저 높은 탑 꼭대기에 올라가면 어떤 느낌일까하고 아쉬워하다 내일 다시 와보기로.

프라하 성을 나와서 남쪽의 페트르진(Petrinske) 공원을 간다고 트램을 탄 것이 잘못타서 구시가까지 한바퀴를 돌았다. 프라하는 서울의 10분의 1 정도 되는 인구의 작은 도시이기 때문에, 한바퀴를 돈다고 해도 몇십분도 안걸린다. 마네스(Manesuv) 다리를 건너가서 다시 카를(Karluv) 다리로, 그리고 구시가 광장과 아파트먼트까지, 설렁설렁 여기저기를 걸어다녔다.



어딘지 잘 기억나지 않는, 내가 가본 가장 좁은 골목



해질 무렵 카를 교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몰다우 강변의 벤치에 앉아 벚꽃잎이 날리는 것을 쳐다보며 아침에 산 빵을 먹었다. 나는 해가 질 때의 그 짧은 순간이좋다. 하늘도 변하고, 길도 변하고, 모든 것이 조용히, 그리고 삽시간에 변하는 그 고즈넉한 시간. 프라하의 하늘은 검푸르게 변해가고, 대규모 콘서트의 리허설이 열리고 있는 구시가 광장은 축제 분위기였고, 사람들은 모두들 행복해 보였다.

물론 나도. 행복했다.
아주 짧고, 망연하고, 농도짙은 그런 행복.



대규모 콘서트의 리허설이 열리고 있는 구시가 광장


아파트먼트에 돌아와서는 아침에 수퍼마켓에서 사온 빵과 햄과 치즈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저녁을 때우고 맥주캔을 홀짝거린다. 담배를 한대 피우려고 창을 열고 내다보니 반달이 떴다. 길가에 면한 이 아파트는 트램과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처럼 들리지만, 하루종일 걸어다닌 내 귀에 그런 소리들은 자장가로만 들린다.

검푸른 프라하의 밤. 매혹적인 프라하의 밤.


체코의 대표 맥주 필즈너 우르켈(Pilsner Urquel)
부드럽고 쓰지 않은 것이 마치 한국의 카스와 비슷한데
프라하 어디서나 이 맥주를 판다. 싸다.
프라하를 사랑하게 되었던 또 하나의 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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