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travelog


화창한 날. 일찍 일어나 아침식사를 만든다.
2인분에 모두 합해 3000원 정도인 맛있는 아침
:-)

아침을 먹고 어제 갔던 보타니쿠스를 다시 찾아가, 코코넛과 바나나 비누를 더 사들인다. 남은 여행 동안 쓸 것과 가족들에게 선물할 것들.
그리고 짐을 줄이기 위해, 선물용 비누와 그동안 샀던 책, 그리고 줄인형 스페이즐씨를 한국으로 부치기로 했다.


바츨라프 가의 우체국, 힘든 하루의 시작

우체국은 바츨라프 광장 중간 쯤에서 골목으로 조금 들어가면 있는데, 건물 내부가 넓고 화려한데다 천정이 자연 채광창이 있어서 밝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이곳 우체국은 사진 촬영 금지 구역인데 몰래 한컷 찍었다 :-)

입구에서 맞아주는 아저씨한테 소포를 부치려고 한다니까 박스를 파는 곳으로 안내해주었고, 박스를 사러 가니 여직원이 내 짐에 맞는 크기의 박스를 골라주고 다음 절차를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자, 이제 박스에 물건들을 넣고, 저기 소포 담당 창구에 가서 등록을 하면 되는데... 음, 한국 우체국에는 소포 부칠때 쓰라고 테이프나 풀 같은 것을 놓아두곤 하는데 여기는 그런 게 없다. 소포 담당 창구로 갔다.

나 : "저, 소포를 부치려고 하는데, 니 앞에 있는 테이프 좀 빌려주세요"
여직원 : (도끼눈에 고개 설레설레) "안된다!"

어찌어찌 테이프를 사서 포장을 해가지고 다시 그 여직원에게 가져갔다.

나 : "이걸 한국으로 부치고 싶어요"
여직원 : 여전히 무서운 얼굴로 무슨 서류를 내민다. 전부 다 체코어로 되어있다. 마치 외계에서 날라온 삐라같다 ㅠ.ㅠ;
나 : "난 체코어를 하나도 몰라요. 도와주세요"
여직원 : (또 도끼눈) "나도 영어 하나도 모른다. 배째라(표정이 이렇게 보였음)."

이 우체국은 전세계인들이 몰려오는 관광 도시 프라하, 거기서도 제일 중심가인 바츨라프 광장에 있는 우체국이다. 적어도 서류에 필요한 영어 단어 정도는 알고 있으면 좋지 않나? 그러나 채 스무살도 안되어 보이는 이 여직원은 쩔쩔매는 나를 도와주려는 기미도 없이, 다른 직원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도 없이, 저렇게 ↑ 무서운 얼굴로 나를 외면한 채 다른 일만 한다(이 사진 역시 몰래... -_-). 이른 아침이라 손님이라곤 나밖에 없는데, 혼자 바쁘시다. (음, 지금 생각하니 영어로 된 서류도 있는데 체코어로 된 걸 준게 아닐까 싶기도...)
한참을 어쩔 줄 모르고 우물쭈물하다가 다행히 어떤 젊은이가 뭔가 부치러 왔길래 영어를 할 줄 아냐고 묻고 도움을 청해 겨우겨우 소포를 부치고 돌아섰다.

나쁜년. 아침부터 기운 빠지게시리.


프라하 성 입구의 장난감 박물관(Museum Hracek)

어제 장난감 박물관과 비투스 성당을 못 들어가본 것이 못내 아쉬워서 다시 프라하 성으로 향했다. 어제는 네루도바 거리를 지나 프라하 성을 올라가서 동문 쪽으로 내려왔는데 오늘은 거꾸로 동문 쪽으로 올라갔다. 프라하성의 동문 입구쪽에 자리잡은 장난감 박물관. 여기에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장난감들이 있다. 고무와 양철, 나무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갖가지 모양의 인형과 작은 옷들, 작은 가구들이 층마다 테마별로 빼곡히 들어차 있다.

* 왼쪽 오른쪽 화살표를 누르면 다른 사진도 볼 수 있습니다.

탄성을 지르며 큐피와 인형 농장과 양철 인형들의 방을 지나, 사람의 아기들처럼 생긴 도자기 인형의 방으로...

다음으로는 인형들을 위한 갖가지 가재도구와 자동차들의 방, 그리고 바비 컬렉션.


비투스 성당과 첨탑

어제 본 것은 비투스 성당의 바깥쪽. 오늘은 성당 안쪽을 보려 한다.
성당 입장은 무료이지만 입구 반대쪽의 바츨라프 예배당을 비롯한 다른 예배당들과 지하 납골당, 그리고 284계단이나 올라가야 하는 첨탑을 두루 둘러보기 위해서는 티켓을 사야 한다. 예배당이나 납골당은 별로 관심 없었고 첨탑만 올라가 보고 싶었는데, 첨탑만을 위한 티켓은 없었기 때문에 ㅠ.ㅠ; 거금 몇만원을 내고 황금소로와 다른 성당들까지 한꺼번에 입장할 수 있는 '종합 티켓'을 끊었다.



내려오는 길 옆 노점의 비스크 인형들. "오직 여기서만 살 수 있음"이라고 써있는데, 비스크 인형에 줄이 달린 것도 처음 봤을 뿐더러 이렇게 싸게 파는 것도 처음 봤기 때문에 하나를 구입했다. 580코루나로 써있었는데 잔돈을 세고 있으니 아주머니가 가격을 좀 깎아줬다.

내가 산 것은 맨 왼쪽 인형. 영양과다처럼 너무 통통한 얼굴의 다른 인형들과 달리 웬지 낯익은(아마 하녀가 아닐까) 착한 얼굴이어서 무조건 저 아이를 골랐다.


신의 축복, 스트라호프 수도원의 정원

사람들이 붐비는 관광지를 둘러보고 난 후, 대개의 관광지 박물관이나 전시관이 끝나는 오후 5시 이후에 가는 곳은 공원. 프라하 성에서 비교적 가까운 말라스트라나 라는 곳에 스트라호프 수도원이 있는데, 수도원 안은 비공개이고 관광객들은 장서실 등 제한된 곳만 들어가볼 수 있게 되어있다. 수도원은 별로 관심 없었고 게다가 이미 관람이 끝난 시간이었으므로, 순전히 그 정원을 보기 위해 산 위의 스트라호프 수도원으로 향했다.


이 십자가 그늘에서, 정원의 풀밭에서, 벚꽃나무 밑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피곤한 다리를 쉬고 천천히 걸어다니고 꽃잎을 만지면서 해가 넘어갈 때까지 있었다. 개를 데리고 산책나온 할머니들과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이 왔다 갔다.
멀리 떠나왔고 아무것도 해야할 일이 없다는 것,
내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이,
그 드넓은 땅 한켠에 있던 내 마음을 넉넉하고 따뜻하게 달래주었던.
좋은 시간.

이런 좋은 시간 후에 곧바로 힘든 일을 겪게 된 것이, 지금 생각하면 조금 안타깝다.


수도원을 내려와 집으로 향하던 길,
Mustek 역과 Namesti Republiky 역 사이에서 소매치기를 당했던 것.

우리는 범인으로 추정되는 소매치기 일당들←을 경찰에 지목했고, 덕분에 일당들과 함께 경찰차로 프라하 경찰서에가서 자정 넘어까지 조서를 써야 했다.


우리를 담당했던 젊은 여경찰과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긴 했지만, 절차상 정식 통역관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 날은 체코가 유럽 연합(EU)에 가입하게 되는 역사적인 날이라 프라하 시내가 온통 떠들썩했고(열두시가 되니 폭죽 소리가 들려왔다 -_-), 정식 통역관을 구하지 못해 몇시간이고 기다려야 했다.

우어.. 지친다.
소매치기 당한 물건을 찾지는 못했지만, 저녁도 못 먹은 우리에게 먹을 것도 챙겨주고 친절하게 대해준 경찰 언니, 지친 내게 기운을 북돋워준 통역 할머니, 그리고 숙소까지 우리를 태워준 경찰 아저씨, 모두들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숙소로 돌아와 곯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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