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travelog


일요일, 이슈트반 대성당의 미사, 그리고 City Center

어렸을때 영세를 받았지만 이름뿐, 날나리 카톨릭 신자인 나.
그렇지만 독실한 카톨릭 친구를 둔 덕에 일요일인 오늘 성 이슈트반 대성당의 열시 미사를 보러 갔다.
미사에 참가하는 현지인들은 중앙의 의자에 앉아있고, 관광객들은 밧줄이 쳐진 울타리 너머에서 성당을 구경하는 시스템인듯. 관리인인 듯한 아저씨, 한눈에도 관광객으로 보이는 우리가 다가오는 것을 보더니 밧줄을 좀더 팽팽히 당긴다. 한번 씨익 웃어준 뒤 밧줄을 제치고 들어가 사람들 틈에 앉았다. 미사는 뭔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하는 건 한국과 비슷했다. 전 세계적으로 표준화가 잘 돼있는 것 같다 ^^.

다른 곳도 그런지 몰라도 부다페스트에는 왕이나 왕비, 정치가, 예술가 등 사람의 이름을 딴 지명이 상당히 많다. 우리나라도 그런가? 하긴 세종로, 선릉, 뭐 이런게 있긴 하다만... 성 이슈트반은 헝가리 왕이었는데 이 성당에 그사람의 오른손이 미이라로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동전을 넣으면 불빛이 나오면서 합장을 한다는데... 죽은 사람 손만 잘라서 보관한 것도 그렇고, 돈을 넣으면 불이 나오면서 움직인다니 좀 우습지 않은가(어쨌거나 그 손은 못봤다).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수다를 떨다가 그만 두정거장이나 지나쳐서 시민공원 역까지 가버리고 말았다.

"어, 반대쪽으로 건너가자. 근데 표 또사야 되나 :-0"
"에이, 어차피 시간도 별로 안지났으니까, 이 표로 그냥 타자."
"어우 야~ 여기선 걸리면 벌금 장난 아니랬어."
(내리자마자 저쪽 입구에, 평소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던 빨간 완장의 검표원 아가씨 두명이 보인다)
"헉. 어떡하냐!"
"잘 말하면 되지 않을까"
(쭈삣쭈삣 걸어가다)
"저... 우리가 모르고 내릴 역을 지나쳐왔는데요. 저 반대편으로 좀 건너가도 돼요?"
"안돼요. 표를 새로 사야만 해요. 아예 여기서 표를 사세요. 자."
(허리춤에서 표를 꺼내서 준다)
"아~ 하하하... 그렇군요. 친절하시네요.."

금방 지하철에서 내린 걸 봤으니 좀 봐줄 수도 있쟎아, 나쁜년들... 어쩌고 뒷다마를 까면서, 덕분에 시민공원을 조금 산책하고 다시 표를 끊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시민 공원에는 유명한 온천이 있는데 내일 다시 와보기로 하고...

* 왼쪽 오른쪽 화살표를 누르면 다른 사진도 볼 수 있음.


오부더. 아이들. 고양이

오늘은 오부더를 간다.
오부더(O Buda)는 '오래된 부더'라는 뜻(꼭 우리나라 말 같다 ^^)인데, 어제 갔던 부더 지구에서도 더 서북쪽에 있다. 부더 지구와 페슈트 지구가 합쳐져서 부다페스트가 되기 훨씬 이전, 도나우 강변에서 도시가 시작되었던 바로 그때의 집들이 남아있는 곳이다. 씨티센터에서 산 과자를 먹으며 교외 전철인 HEV를 타고 머르기트 다리를 건넌다.

빗방울이 한두방울 흩뿌리다가 햇살이 잠깐 비치기도 하는 한산한 오후 거리를 천천히 걷는다.
부다페스트의 낡은 골목길들을 걷다 보면 곳곳에 낙서 투성이다. 물론 '벽화'라고 불러도 될 만큼 멋진 낙서들이다
* 낙서도 정책적으로 관리하는 것 아닐까. 실제로 그 후에 '낙서 관리국'이라고 쓰인 봉고차가 지나가는 것을 본 적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 -_-
빗물이 고여있는 길거리에는 어린 여자아이들이 노랗고 긴 말총머리를 찰랑거리며 장난을 치고, 자전거를 탄 꼬마들과 어린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산책나온 엄마들, 손에 손을 잡고 오부더를 구경하러 온 노부부들이 가끔씩 지나간다. 평화롭다...
헝가리를 비롯한 동유럽의 아이들은 말 그대로 인형처럼 생겼다. 타지인에 대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환하게 웃는 이 귀여운 아이들.


고장난 전철. 고마운 할아버지

오부더 중앙 광장까지 걸어가서 생선 요리집 우이 시포시(Uj Sipos)에서 저녁을 먹었다. 이곳도 전날 저녁을 먹은 시시 레스토랑 만큼이나 유명한 곳인데, 커다란 생선을 통째로 구워서 갖고 나오더니 살 부분만 썰어서 접시에 놓아준다. 맛있었지만 가격에 비해서는 좀...

돈을 아끼려고 1일 정액권을 끊지 않았기 때문에 그때그때 전차를 탈때마다 자동발매기에서 1회 승차권을 사야만 했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자동 발매기가 고장이다. 어찌어찌 해서 힘들게 표를 구해 HEV를 탔는데 글쎄... 갑자기 중간에서 전차가 움직이질 않는다. 뚱뚱한 아저씨가 연장통을 들고 왔다갔다 하더니 뭐라고 방송이 나오더니, 철로 중간에 사람들이 다 내린다. 옆에 있던 사람한테 물어보니 기차가 망가져서 못간다나. 흐허허허 -_-
* 이걸 보고 헝가리는 뭐 이러냐, 제대로 된게 하나도 없다고 투덜거렸는데, 얼마전 2호선 신대방역에서 똑같은 일을 겪었다.

어디로 가나... 하고 걷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막 따라오면서 부른다. 어떤 인자해보이는 할아버지가 띄엄띄엄한 영어로,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 코다이 쾨뢴트 역으로 가야한다고 했더니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지하철 노선을 이야기해 주신다. 걱정이 되는지 몇번씩 되풀이해 가르쳐 주신다. 난 이때 솔직히 조금 당황하고 귀찮기까지 했지만, 친구는 할아버지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할아버지 : "혹시 한국에서 오셨소?"
친구 : "네. 어떻게 아셨어요?"
할아버지 : "나는 한국 전쟁에 참여했었어요. 난 헝가리인이지만 미국에서 태어났는데, 한국전에는 군의관 장교로 갔었어요. 지금은 다시 헝가리로 와서 살지요."
나 : "와~ 정말요? 그럼 한국엔 언제까지 계셨어요?"
할아버지 : "응. 51년부터 53년까지 있었지요. 오~ 한국은 너무도 아름다운 나라예요. 한국 사람들도 너무 좋고..."

들어보니 이 할아버지는 전철 안에서부터 한국어로 수다떠는 우리를 눈여겨 보고 있었는데, 전철이 고장나 어쩔 줄 모르는 우리를 보고 도와주려고 말을 걸어온 것이었다. 이상한 할아버지가 아닌가 의심했던 나는 너무도 미안했다. 아직도 한국이 그립다고 하시던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신 듯 감격하셨다(헤어질때 감격스러운 얼굴로 내 손등에 입을 맞추기까지 하셨다 ^^). 우린 할아버지가 일러준 대로 조금 걸어가서 트램 3호선, 1호선을 타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할아버지, 고마워요~)



* 아직도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친구와 좀전에 엠에센으로 얘기를 나눴다. 지금은 터키의 이스탄불에 있고, 조만간 시리아로 간다고. 이제 세달이 좀 넘은 그 여행을, 지구 반 바퀴 뒤에 있는 친구와 함께 회상한다.
나에게 다시 그런 시간들이 올까, 그렇게 자유롭고, 그렇게 팽팽한 경험의 나날들이.
그런 시간들을 언제든 다시 가질 수 있다고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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