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travelog


온천욕


부다페스트는 온천으로 유명한 도시. 게다가 월요일은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문을 닫으니 온천욕이나 하자.
세체니 온천은 부다페스트의 몇몇 유명한 온천들 중 대중적이고 비교적 싼 곳으로, 어제 갔던 시민공원 옆에 있다. 처음에 모르고 치료 목적으로 온천욕 하는 사람들이 줄서있는 곳에 서있었더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나를 붙잡고 "여긴 치료하는 사람들이 서있는 데야. 여기 서있으면 오래 걸린단다" 하고 가르쳐 준다. 대부분의 헝가리 사람들이 매우 무뚝뚝한 표정으로 여행객을 쳐다보곤 하지만, 표정만 그렇지 다들 친절하다. 난, 별거 아닌 걸로 조근조근 잔소리해주는 이런 분위기를 좀 좋아한다(근데 한 얘기 또하는 건 싫다...).


친구는 온천욕이 싫다고 해서 혼자 탈의실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야외 온천탕을 들어갔다.
원래 물을 좋아하고, 온천욕도 좋아하고, 게다가 잠수하는 것을 좋아하는 난, 커다란 야외 온천 세개 중 제일 가까운 곳에 발을 담그고는 따뜻한 물 속에 쑤욱 잠겼다...
잠시 후 머리를 내밀어 보니...
모두들 나만 쳐다보고 있다 -_-;
알게 뭐냐. 이탕 저탕을 오가면서 한시간 반쯤 온천욕과 건식 사우나를 하고 나와서 온천 옆 오리들이 둥둥 떠있는 작은 호수가에서 머리를 말렸다.
며칠동안 부슬부슬하던 비도 그치고 해가 쨍~ 나서 기분도 가볍다.



환전사기를 당할 뻔 하다 :-0


낮잠 좀 자주고, 지난번에 갔던 중앙시장에서 동유럽 쪽의 대표적인 음식인 굴라쉬를 싸게 먹을 수 있다기에 갔다. 현금이 없어서 환전을 하려고 중앙시장 1층 입구쪽 구석 환전소를 갔다. 이전엔 그냥 내어주는 대로 받았는데, 오늘은 먼저 몇 포린트가 필요한지를 계산해서 그만큼의 유로화를 부스 안의 노파에게 주었다. 그런데 노파가 다시 내어주는 돈은 내 예상액보다 5000원 정도 적다. 내가 틀리게 계산했나? 부스 앞에서 다시 계산기를 두드렸다. 아무리... 두드려도... 내가 계산한 게 맞는데!

yuna : "저, 제가 000유로를 드렸거든요? 그러면 000포린트를 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노파 : (모니터를 돌려서 보여주며) "봐라. 이게 니가 준 돈이고(입력한다) 이렇게 엔터를 치면(엔터를 누른다) 000이 나오쟎느냐. 뭐가 틀리냐?"
yuna : "하지만 여긴 0유로에 00포린트라고 환율이 써져 있쟎아요. 그러면 00유로면 000포린트를 주셔야죠."
(계산기를 두드려 보여준다. 이 과정을 두번이나 반복했다.)
그러고 난 후에야 나는 비로소 그 노파가 보여주는 절대절명의 권력을 가진 모니터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 노파는 내가 준 돈을 유로가 아니라 US 달러로 입력한 것이었다(내가 알파벳도 못 읽는 동양 바보라고 생각한 것일까 -_-).
유로는 1400원, 달러는 1200원 정도의 환율이었으니 차액이 나는게 당연하다.
yuna : "이건 유로가 아니라 달러쟎아요! 난 유로를 줬는데!"
노파 : "흐음..." (주섬주섬 돈을 챙겨 준다. 망할놈의 할망구)

도대체 이 할망구가 이런 식으로 여행객들에게 몇번이나 사기를 쳐먹었을까. 그것도 몇푼도 안되는 돈을... 생각 같아서는 부스 옆에 하루종일 서서 "저 할망구 조심하세요. 환전 사기를 친다구요!" 하고 알려주고 싶었지만 배가 너무 고파서 관뒀다.



갑자기 피곤이 밀려온다. 사람이 싫어지고, 세상이 싫다.
난 애써서 '그 늙은이가 눈이 어두워서 돈을 잘못 봤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HEV를 타고 센텐드레로


부다페스트의 교외에는 아름다운 작은 도시들이 흩어져 있다.
센텐드레는 부다페스트에서 교외전철인 HEV를 타고(어제 탔던 그 전차다) 북쪽으로 20킬로미터 정도 가면 있는 작은 마을로, 17세기 말 세르비아인 수공업자와 상인들이 이주해와 살았던 마을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영화 세트처럼 모든 것이 완벽해서, 혹시 누군가가 한 마을 전체를 디자인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가는 그런 마을이다. 사람 사는 곳이 이렇게 완벽하게 꾸며질 수가 있단 말인가. 게다가 그 거리에는 사람들 역시 마네킹처럼 완벽하고도 우아한 이목구비를 갖춘(그러나 몸집은 한국인처럼 작아서 쭉쭉빵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쉽다... -_-) 영화배우같은 사람들이 떼로 몰려다닌다. 심지어 전차 안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배우 Stephen Baldwin 같이 생긴 남자도 봤다.


* 왼쪽 오른쪽 화살표를 누르면 다른 사진도 볼 수 있음.



여성 도예가 코바치 머르기트(Kovacs Margit) 박물관


센텐드레에 있는 이 박물관은 18세기 세르비아 상인의 집이었다고 한다. 아기자기한 안뜰과 전시장으로 쓰이는 작은 집들과 지하실.
이 여인의 작품들은 매우 사랑스럽다. 우아한 외모의 동유럽 여성들, 귀여운 아기들, 마귀할멈처럼 요상하게 생긴 할머니들, 헝가리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 그들의 고난, 그들의 슬픔, 기쁨이 이 여성 도예가의 섬세한 도예 작품들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사진을 못찍게 해서 정말 마음에 드는 것들만 조그만 수첩에 스케치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것만 해도 거의 열 점이 넘었다. 이곳 역시 머리가 하얗고 뚱뚱한 할머니들이(이 할머니들도 이전에는 우아한 외모와 가냘픈 몸매를 지닌 멋진 여자들이었으리라 ^^) 내 스케치를 힐끔힐끔 훔쳐보며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관람객이 우리 두사람 뿐이었으니까.
* 이곳을 놓쳤다면 나중에 많이 후회했을 것 같다.




박물관을 나와 도나우강의 작은 지류로 보이는 강을 따라 걸었다. 오늘의 숙소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돈을 아끼려고, 젊은 스탭들이 운영한다는, '활기넘친다'는 싼 게스트 하우스 하나를 알아두었다.


Station Guesthouse


부다페스트 동역 근처에 있다는 Station Guesthouse.
전화를 했더니 어디어디라고 유창한 영어로 머라고머라고 가르쳐주면서(매우 가깝다는 듯이), 찾아올 수 있겠냔다. 찾아가야지, 안가면 어디서 자냐.
빵집에서 길 물어보고, 아줌마한테 길 물어보고, 어찌어찌해서 배낭 두개 지고 30분을 걸었다. 걷고 또 걸어
파김치가 되어 도착했더니 '젊은' 스탭놈이 미소로 반긴다.

스탭 : 여어~ 너 무척 피곤해 보이는데. 엄청 걸었겠다?
yuna : 죽을 거 같다(너냐, 가깝다고 한 놈이?). 방 주라. 아침밥은 안주냐?
스탭 : 우린 아침같은거 없다. 여권 좀 줘봐라.
(여권 줬더니 숙박부에 머라고 적는다)
스탭 : 우오, 너 진짜 00년에 태어났냐? 쟤는 너보다 어리고? 너 엄청 젊어보이는구나. 난 니가 쟤보다도 더 어린 줄 알았는뎅!
yuna : 하하 고맙다(안그래도 그런 말 많이 듣는다).
스탭 : 기달려라. 이불 날라다 주마.

엄청 피곤했으나 그만큼 엄청 잘생긴(게다가 마력 만점 미소를 연신 흘리는) 이놈을 보니 피곤 따위는 싹 달아나고 웃음이 절로 나는 것이...(이것을 '늙어서 주책'이라고 하는 것이다)
게다가 방에 와서 카메라 메모리 백업하고 일기 쓰려고 노트북을 켰는데... 무선 인터넷 신호가 뜨는 것 아닌가 ^0^
공짜로 공짜로 무선인터넷을 쓸 수 있다니! 엠에센 들어가서 뺑이치는 회사 동료들에게 염장 메시지를 날려주고, 샤워하고, 곯아떨어질 준비.
...를 하려고 했으나... 1층 맥주 바에서 끊임없이 울려나오는 음악소리와, 옆방에서 들리는 영어와 독일어 수다 소리 ㅠ.ㅠ
다 좋다. 그런데 아아~ 동유럽엔 어째 이렇게 겁나게 잘생긴 놈들이 가는 곳마다 마구 깔려있단 말이냐...
한국에 돌아가서 제대로 적응을 할 수나 있을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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