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travelog



그날 밤. 만하임 중앙역

마인츠. H씨와 K씨의 집

노숙을 면하다

여행을 떠나온 후에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천국이 있고 지옥 또한 있다는 것을. 길을 떠나고 나니 많은 사람들이 몸소 이를 가르쳐준다. 그 중에서도 어제 만하임 중앙역에서 처음 만난 H씨와 친구 K씨가 나눠준 따뜻하고 섬세한 배려는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어제 밤 만하임 역에서 오지 않는 마인츠(Mainz) 행 기차를 기다리며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먼저 영어로 말을 걸어온 동양인이 있었다(플랫폼에는 우리 셋 밖에는 없었다). 어디서 왔느냐고 하면서 서로 인사를 하다 보니 한국 사람이었다. 우리가 일본 사람인 줄 알았다고. 들어보니 마인츠행 기차는 20분 연착된다고 방송에 나왔다는데 독일어를 모르는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 이 기차가 더이상 연착되면 마인츠에서 함부르크 가는 밤 기차를 탈 수 없기 때문에, 만일의 경우 마인츠 역에서 노숙을 할 각오를 이미 하고 있던 터였다(이때쯤 남부 독일의 밤은 무지 춥다 ㅠ.ㅠ).

마인츠로 유학온 H씨는 학기를 마치고 마침 오스트리아의 인스부르크에 취업 시험을 보러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그 밤중에 오도가도 못하는 우리를 만난 것. 우리는 연착된 마인츠행 열차에 같이 올랐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우리의 딱한 사정을 들은 H씨는 흔쾌히 우리를 마인츠의 집에서 재워주었다. 집에서 자는 것만 해도 고마운데 불편한 점은 없는지 세심하게 신경을 써주셨다. 게다가 오늘 아침은 K씨의 생일이기도 해서, 정통 독일식의 푸짐한 아침까지 대접받았다.


마인츠 돔과 구텐베르크 박물관

H씨에게서 마인츠 지역과 독일 여행에 대한 전반적인 조언을 듣고, 마인츠에 며칠 머물면서 근처의 프랑크푸르트에 다녀오기로 했다. 사실 마인츠를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보다는 우리처럼 기차를 갈아타거나 마인츠에서 출발하는 라인강 유람선을 타러 오는 사람들이 많지만, 마인츠는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들 중 하나이며, 조용하고 매력적인 도시였다.

H씨와 함께 시내의 마인츠 돔(Mainzer Dom) 성당과 구텐베르크 박물관(Gutenberg Museum)을 찾아갔다. 독일에서는 대주교가 머무는 성당을 돔이라고 하며, 독일에 세 군데가 있는데 그 하나가 마인츠다. 마인츠 돔은 로마네스크+고딕 양식의 건축물로 멋진 스테인드글래스가 있었고, 부설 박물관에서는 마침 십자군 유물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인츠는 구텐베르크가 태어난 곳. 마인츠에 있는 구텐베르크 박물관에는 구텐베르크가 사용했던 인쇄 도구들을 비롯해 활자와 인쇄에 관한 거의 모든 자료들이 집대성되어 있었다. 한국, 중국, 일본관도 있는데, 한국관에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와 해인사 사진, 직지심경, 다라니경, 삼강행실도 등의 옛날 책들이 전시되어 있다. 일본관에는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일본 출판에 관련된 일러스트레이션, 서적, 서체 등, 시대나 종류 면에서 다양하고 매력적인 자료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어서, 한국관과 비교가 좀 된다.

구텐베르크 박물관 3층에는 다다(DADA)의 볼드한 유인물에서부터 금박과 덩쿨 무늬가 화려한 아르누보풍의 일러스트집, 그리고 여러가지 포맷과 아이디어의 동화책, 만화책들이 전시되어 있다. 동화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행복 :-D


프리바트 가스트하우스로

H씨가 마인츠의 숙박 정보 사이트에서 숙소를 찾고 전화로 숙박비 흥정까지 해주어서, 너무도 싼 가격에 숙소를 구할 수 있었다.
비가 올 듯 흐리고 쌀쌀한 날씨. 짐을 가지고 숙소로 왔다. 이곳은 프리바트(privat), 즉 사설 게스트하우스인데, 마인츠의 중앙역에서 64번, 28번 버스를 타고 4~5정거장 가서 마인처 가(Meinzer Str.)에서 내린 후 3분쯤 걸어오면 있다.

TV, 냉장고, 그리고 우리나라의 펜션이나 콘도처럼 간단한 취사도구가 갖춰져 있고 테이블 위에는 깜찍한 커피메이커가 놓여진, 정갈한 집이었다. 이렇게 여행 내내 좋은 숙소들을 구할 수 있다는 것에 하느님께 감사드렸다(H씨에게도).
친구 따라 성당 몇번 다녀본 날나리 신자가 이런 말 하면 좀 우습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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