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01Budapest] 2004.4.16 낯설고 매혹적인, 밤의 부다페스트
밤을 새우려고 한 것은 아닌데 일정표를 그리다 보니 날이 밝았다. 여섯시가 채 안되어 집을 나서서, 삼성동 공항터미널로 가려고 택시를 탔다.
운전사 아저씨 : "사진학과 학생들이신가봐?"
yuna : "네? 헤헤.. 아닌데요."
운전사 아저씨 : "아.. 난 또 카메라랑 가방 보구... 뭐 어디 해외로 나가시나 보죠?"
(... 어쩌고 저쩌고.... 나의 설명과 아저씨의 사우디 아라비아 여행담...)
운전사 아저씨 : "여자 혼자 해외여행 가면 절대 안돼요. 혼자 간 여자들 안돌아오는 경우도 많다쟎아요. 가면 서양 남자들이 그렇게 잘해준대네. 그래서 거기 남자들 만나가지고 눌러 살고... 그래 그러다 헤어지면 어쩌나. 어이구. 쯧쯧..."
yuna : "하하.. 저는 혼자 안가니 다행이죠 뭐." (아이씨, 이쉐이 괜히 델꾸왔나봐.. 혼자올걸...)
차창 밖으로는 평소에 절대 볼 일이 없는 희푸른 새벽의 도심 풍경이 지나간다.
yuna : "그 왜... 수줍음을 많이 타서 새벽에만 돌아다니며 거리 사진을 찍었다던 파리의 사진가가 누구였냐?"
친구 : "Eugene Atget. 지난번에 말해줬쟎아."
yuna : "으응... 그치. 생각이 안나서..." (그래, 나도 그사람처럼 언젠가 새벽에 일어나서 이런 푸르스름한 도심 풍경을 찍어볼테야.라고 결심함)
* 환갑때쯤 되면 새벽잠이 없어진다니까. 가능할 수도 있겠다.
10:45 북경 도착. 무뚝뚝한 공항 직원들
여기는 북경(PEK) 공항. Transfer라는 사인이 어딘가에 있으리라 기대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한 귀퉁이에 어떤 여자(...라기 보다는 여학생으로 보이는)가 'transfer : PEK -> VIE' 라고 쓰여진 아주아주 조그만 종이때기를 들고 서있는 것이 아닌가!
허걱~ 이것이 과연 그 거대 중국의 북경 공항이란 말이냐 -_-;
* 왼쪽 오른쪽 화살표를 누르면 다른 사진도 볼 수 있음. |
그담엔 또 어떤 뚱땡이 아줌마를 졸졸졸 따라가서 출입국 검사를 했는데 (근데 어째 중국 사람들은 이렇게 죄다 동그랗고 통통한 것 같아...). 친구는 그 뚱땡이 아줌마에게 아주 오래된 빅토리녹스 나이프를 뺏겼다. 물론 내 뒤에 있던 백인 아저씨도 콧수염 손질하는 작은 가위를 뺏겼다. 그러나 내 가방에 있던 Leatherman의 작은 가위 겸 나이프는 귀국할 때까지 몇번의 입출국 검사에 한번도 안걸렸다. 과일도 깎고 빵도 자르고 가끔 머리도 다듬어주고 해야되는데 이걸 뺏기면 좀 곤란하쟎아 ;-)
이 아줌마를 포함해 북경의 공항 직원들은 상당히 무뚝뚝했다. 뿌루퉁한 얼굴로 자기네들끼리 꾸앙꾸앙~ 수다를 떨다가 갑자기 우릴 향해 중국어인지 영어인지 모를 단어들을 한마디 툭툭 던진다. 정말 알아듣기 힘든 영어이고, 또 언제 나를 향해 질문을 던질지 모르므로 항상 주의를 기울여 주어야 했다.
아~ 북경은 덥다. 아직 봄인데, 섭씨 22도라나.
* 그러나 나중에 들어보니 이상기후로 인해 한국은 더 더웠다고 한다.
7시간 과거로, 비엔나
북경 시간으로 오후 두시 반쯤 출발해 비엔나 시각으로 4시 45분에 도착한다. 이렇게 따지면 네시간이지만, 7시간을 뒤로 가는 셈이므로 총 비행 시간은 11시간이다. 이렇게 계속 과거로 과거로 가면, 시간이 가지 않거나 정말로 과거로 가버릴지도 모르쟎아 :O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아무래도 잠을 못잔 탓에 너무 피곤했었나보다 (그런데 지금도 이 문제에 관해선... 잘 모르겠다 -_-). 정말 졸렸지만, 북경 상공을 날아올라 황량한 산맥들이 펼쳐진 곳을 지나고 기내식이 나올 때까지 자지 않고 기다렸다. 흐흐.
어, 다왔나봐!
비엔나 상공은 온통 솜사탕같은 뭉게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 예쁜 구름 위를 달리면서 아래를 보니 언뜻언뜻 땅과 길이 보인다. 조금 후 구름 속을 뚫고 내려오니 정말 그림같은, 삭막한 북경과는 비교되지 않을만큼 아름다운 비엔나의 거리들이 보였다. 온통 뾰족뾰족한 집들, 정말 많은 나무와 호수와 공원들, 그리고 그 사이를 황혼을 받아 금빛으로 번쩍이며 굽이쳐 흘러가는 강.
연신 탄성을 질러가며 셔터를 눌러댔다.
19:33 비엔나 공항. 초 미니멀 공항 화장실
비엔나 공항 화장실. 불투명한 두꺼운 유리가 주욱 늘어서 있고, 손잡이도 아무런 표시도 없다. 그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서있다 눈이 마주친 금발 아가씨와 나.
금발녀 : "이것 어떻게 들어가는 것인지..."
yuna : "그러게요 저도 여기 처음이라..."
안에 누가 있는지 없는지도 도통 알 수가 없고, 어떤게 문인지조차 구분이 안된다. 둘이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한참 여기저기 살펴보며 고민하다가, 문을 당겼더니 열렸다 -_-; 서로안도의(그러나 민망한!) 웃음을 교환하고 각자 쉬를 하러 들어감. 쉬를 하고 났는데 이번엔 버튼이 없네. 변기 위 벽에 담배갑 두개만한 장방형의 알루미늄이 붙어있길래 혹시나 하고 밀어보았더니 물이 내려간다. 크헉~
* 나중에 비엔나에 다시 와서 보니 비엔나 화장실의 물내리는 손잡이는 다 이렇게 생겼다.
낯설고 매혹적인, 밤의 부다페스트
커다랗고 육중한 나무 대문과 | 밤 열시쯤 도착한 부다페스트에는 추적추적 을씨년스럽게 비가 내리고 있다. 음... 내가 생각했던 부다페스트 답군. 공항 미니버스를 타고 부다페스트 시내로 가는 길. 내 눈에 비친 부다페스트의 밤거리는 온통 낯설고 매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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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싶은 마음으로 공중전화를 찾아 헤매다가 들어간 경찰서. 그곳에 공중전화가 있긴 했지만 카드식이었다.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뚱뚱하고(헝가리의 공무원들도 대체로 뚱뚱하다 -_-) 마음 좋아보이는 경찰 아저씨 두명이 지나간다.
yuna : "죄송한데요, 우린 여행객인데, 이 주소에 묵으려고 찾아왔는데 아무도 대답을 안해요. 좀 도와주세요."
경찰 A : "어디? 어디라고?" (영어 잘 못한다. 내 수첩을 가져가 깨알같이 써진 주소와 전화번호를 읽는다. 한국말까지 읽으려고 하는 것 같아 순간 당황... -_-)
경찰 B : "어디래?" (이건 물론 헝가리말.. 아마도 이런 뜻이지 않았겠느냐는...)
경찰 A : "어, 0670-538..." (이것도 헝가리말.. 숫자는 영어랑 비슷하게 읽는 것 같다)
경찰 B : 핸드폰을 꺼내 전화 걸어서 내게 넘겨준다...
(... 어쩌고 저쩌고 "아주머니 왜 문 안열어주세요 으흑흑... 그래그래 열어줄께 어여와요..." 어쩌고 저쩌고 ...)
yuna : "아하하 정말 고마워요 아저씨들."
경찰 AB : "천만에요, 바이~"
우여곡절 끝에 들어온 민박집은 한층에 4~5개의 집들이 가운데 작은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전형적인 부다페스트의 아파트먼트.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컴컴한 복도, 높은 천정에 매달린 희미한 조명들, 삐걱삐걱 소리가 나는 나무 바닥과 나무 창틀...
오오~ 정말로 매혹적인 집이로군.
* 부다페스트 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와 체코 등지의 오래된 집들이 모두 이런 식이다.
거의 이틀을 꼬박새우고 비행기를 열 네시간도 넘게 타고 온 나는 샤워를 하고 거실에 있는 컴퓨터로 블로그에 들어갔다 나오고 네이트온으로 잘 도착했다는 문자메시지를 가족과 친구에게 보낸 뒤 곧바로 곯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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