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travelog


밤을 새우려고 한 것은 아닌데 일정표를 그리다 보니 날이 밝았다. 여섯시가 채 안되어 집을 나서서, 삼성동 공항터미널로 가려고 택시를 탔다.

운전사 아저씨 : "사진학과 학생들이신가봐?"
yuna : "네? 헤헤.. 아닌데요."
운전사 아저씨 : "아.. 난 또 카메라랑 가방 보구... 뭐 어디 해외로 나가시나 보죠?"
(... 어쩌고 저쩌고.... 나의 설명과 아저씨의 사우디 아라비아 여행담...)
운전사 아저씨 : "여자 혼자 해외여행 가면 절대 안돼요. 혼자 간 여자들 안돌아오는 경우도 많다쟎아요. 가면 서양 남자들이 그렇게 잘해준대네. 그래서 거기 남자들 만나가지고 눌러 살고... 그래 그러다 헤어지면 어쩌나. 어이구. 쯧쯧..."
yuna : "하하.. 저는 혼자 안가니 다행이죠 뭐." (아이씨, 이쉐이 괜히 델꾸왔나봐.. 혼자올걸...)

차창 밖으로는 평소에 절대 볼 일이 없는 희푸른 새벽의 도심 풍경이 지나간다.

yuna : "그 왜... 수줍음을 많이 타서 새벽에만 돌아다니며 거리 사진을 찍었다던 파리의 사진가가 누구였냐?"
친구 : "Eugene Atget. 지난번에 말해줬쟎아."
yuna : "으응... 그치. 생각이 안나서..." (그래, 나도 그사람처럼 언젠가 새벽에 일어나서 이런 푸르스름한 도심 풍경을 찍어볼테야.라고 결심함)
* 환갑때쯤 되면 새벽잠이 없어진다니까. 가능할 수도 있겠다.


10:45 북경 도착. 무뚝뚝한 공항 직원들


여기는 북경(PEK) 공항. Transfer라는 사인이 어딘가에 있으리라 기대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한 귀퉁이에 어떤 여자(...라기 보다는 여학생으로 보이는)가 'transfer : PEK -> VIE' 라고 쓰여진 아주아주 조그만 종이때기를 들고 서있는 것이 아닌가!
허걱~ 이것이 과연 그 거대 중국의 북경 공항이란 말이냐 -_-;


* 왼쪽 오른쪽 화살표를 누르면 다른 사진도 볼 수 있음.


그담엔 또 어떤 뚱땡이 아줌마를 졸졸졸 따라가서 출입국 검사를 했는데 (근데 어째 중국 사람들은 이렇게 죄다 동그랗고 통통한 것 같아...). 친구는 그 뚱땡이 아줌마에게 아주 오래된 빅토리녹스 나이프를 뺏겼다. 물론 내 뒤에 있던 백인 아저씨도 콧수염 손질하는 작은 가위를 뺏겼다. 그러나 내 가방에 있던 Leatherman의 작은 가위 겸 나이프는 귀국할 때까지 몇번의 입출국 검사에 한번도 안걸렸다. 과일도 깎고 빵도 자르고 가끔 머리도 다듬어주고 해야되는데 이걸 뺏기면 좀 곤란하쟎아 ;-)


이 아줌마를 포함해 북경의 공항 직원들은 상당히 무뚝뚝했다. 뿌루퉁한 얼굴로 자기네들끼리 꾸앙꾸앙~ 수다를 떨다가 갑자기 우릴 향해 중국어인지 영어인지 모를 단어들을 한마디 툭툭 던진다. 정말 알아듣기 힘든 영어이고, 또 언제 나를 향해 질문을 던질지 모르므로 항상 주의를 기울여 주어야 했다.
아~ 북경은 덥다. 아직 봄인데, 섭씨 22도라나.
* 그러나 나중에 들어보니 이상기후로 인해 한국은 더 더웠다고 한다.


7시간 과거로, 비엔나

북경 시간으로 오후 두시 반쯤 출발해 비엔나 시각으로 4시 45분에 도착한다. 이렇게 따지면 네시간이지만, 7시간을 뒤로 가는 셈이므로 총 비행 시간은 11시간이다. 이렇게 계속 과거로 과거로 가면, 시간이 가지 않거나 정말로 과거로 가버릴지도 모르쟎아 :O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아무래도 잠을 못잔 탓에 너무 피곤했었나보다 (그런데 지금도 이 문제에 관해선... 잘 모르겠다 -_-). 정말 졸렸지만, 북경 상공을 날아올라 황량한 산맥들이 펼쳐진 곳을 지나고 기내식이 나올 때까지 자지 않고 기다렸다. 흐흐.



어, 다왔나봐!


비엔나 상공은 온통 솜사탕같은 뭉게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 예쁜 구름 위를 달리면서 아래를 보니 언뜻언뜻 땅과 길이 보인다. 조금 후 구름 속을 뚫고 내려오니 정말 그림같은, 삭막한 북경과는 비교되지 않을만큼 아름다운 비엔나의 거리들이 보였다. 온통 뾰족뾰족한 집들, 정말 많은 나무와 호수와 공원들, 그리고 그 사이를 황혼을 받아 금빛으로 번쩍이며 굽이쳐 흘러가는 강.
연신 탄성을 질러가며 셔터를 눌러댔다.



19:33 비엔나 공항. 초 미니멀 공항 화장실


비엔나 공항 화장실. 불투명한 두꺼운 유리가 주욱 늘어서 있고, 손잡이도 아무런 표시도 없다. 그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서있다 눈이 마주친 금발 아가씨와 나.

금발녀 : "이것 어떻게 들어가는 것인지..."
yuna : "그러게요 저도 여기 처음이라..."

안에 누가 있는지 없는지도 도통 알 수가 없고, 어떤게 문인지조차 구분이 안된다. 둘이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한참 여기저기 살펴보며 고민하다가, 문을 당겼더니 열렸다 -_-; 서로안도의(그러나 민망한!) 웃음을 교환하고 각자 쉬를 하러 들어감. 쉬를 하고 났는데 이번엔 버튼이 없네. 변기 위 벽에 담배갑 두개만한 장방형의 알루미늄이 붙어있길래 혹시나 하고 밀어보았더니 물이 내려간다. 크헉~
* 나중에 비엔나에 다시 와서 보니 비엔나 화장실의 물내리는 손잡이는 다 이렇게 생겼다.


낯설고 매혹적인, 밤의 부다페스트


커다랗고 육중한 나무 대문과
온통 아르누보 문양으로 치장된 집들, 창살들,
그 안에서 비쳐나오는 빛.
나를 쉽게 들여보내지 않던, 저 우아하고도 완고한 창살.

밤 열시쯤 도착한 부다페스트에는 추적추적 을씨년스럽게 비가 내리고 있다.
음... 내가 생각했던 부다페스트 답군.
공항 미니버스를 타고 부다페스트 시내로 가는 길. 내 눈에 비친 부다페스트의 밤거리는 온통 낯설고 매혹적이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그 낯선 공기를 조심스럽게 들이마셨다.


미니버스는 "코다이 쾨뢴트(Kodaly Korond~)" 라고 외치며 비오는 거리에 나를 내려놓고 가버렸고, 민박집 사이트에 나온 대로 찾아가서 인터폰을 눌렀지만 눌러지지도 않고, 문을 두드려도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울고 싶은 마음으로 공중전화를 찾아 헤매다가 들어간 경찰서. 그곳에 공중전화가 있긴 했지만 카드식이었다. 어쩔 줄 모르고 있는데 뚱뚱하고(헝가리의 공무원들도 대체로 뚱뚱하다 -_-) 마음 좋아보이는 경찰 아저씨 두명이 지나간다.

yuna : "죄송한데요, 우린 여행객인데, 이 주소에 묵으려고 찾아왔는데 아무도 대답을 안해요. 좀 도와주세요."
경찰 A : "어디? 어디라고?" (영어 잘 못한다. 내 수첩을 가져가 깨알같이 써진 주소와 전화번호를 읽는다. 한국말까지 읽으려고 하는 것 같아 순간 당황... -_-)
경찰 B : "어디래?" (이건 물론 헝가리말.. 아마도 이런 뜻이지 않았겠느냐는...)
경찰 A : "어, 0670-538..." (이것도 헝가리말.. 숫자는 영어랑 비슷하게 읽는 것 같다)
경찰 B : 핸드폰을 꺼내 전화 걸어서 내게 넘겨준다...
(... 어쩌고 저쩌고 "아주머니 왜 문 안열어주세요 으흑흑... 그래그래 열어줄께 어여와요..." 어쩌고 저쩌고 ...)
yuna : "아하하 정말 고마워요 아저씨들."
경찰 AB : "천만에요, 바이~"


우여곡절 끝에 들어온 민박집은 한층에 4~5개의 집들이 가운데 작은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전형적인 부다페스트의 아파트먼트. 사람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컴컴한 복도, 높은 천정에 매달린 희미한 조명들, 삐걱삐걱 소리가 나는 나무 바닥과 나무 창틀...
오오~ 정말로 매혹적인 집이로군.
* 부다페스트 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와 체코 등지의 오래된 집들이 모두 이런 식이다.

거의 이틀을 꼬박새우고 비행기를 열 네시간도 넘게 타고 온 나는 샤워를 하고 거실에 있는 컴퓨터로 블로그에 들어갔다 나오고 네이트온으로 잘 도착했다는 문자메시지를 가족과 친구에게 보낸 뒤 곧바로 곯아떨어졌다.
소망이네 민박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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