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na's travelog


* 오늘은 사진이 많아서 로딩이 좀 오래 걸립니다... 자제하려고 했으나... 흐허허...


오래된 거리의 아름다움. 언드라시 거리


늦잠을 자리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기적적으로 여덟시 반에 눈이 떠졌다. 회사가는 날도 이렇게 일찍은 못 일어나건만...
밖엔 보슬비가 내리고 있다. 이렇게 삼일간 계속 내렸다.
커다랗고 무거운 대문을 열고 나간 아침부터 늦은 밤 다시 그 문을 열고 돌아올 때까지, 내 가슴을 쿵쿵거리게 만든 이 자그마한 회색 도시의 매력...

* 왼쪽 오른쪽 화살표를 누르면 다른 사진도 볼 수 있음.



개똥과 담배연기, 매연의 거리. 바치 거리와 중앙시장


비가 와서 꽤 춥다. 번화가인 바치(Vaci) 거리 북쪽에 있는 '제르보'라는 오래된 까페에서 뜨거운 커피를 마시고 나니 몸이 좀 풀렸다. 여기도, 어디도, 동양인은 찾아볼 수도 없다. 모든 시선 집중 -_-;
바치 거리를 배회하다가, 비가 와서 벼룩시장이 열리지 않을 거라는 민박집 아주머니 말씀에 우산도 살 겸 중앙시장으로 향했다(우산 같은 건 없었다 ㅜ.ㅠ).



부다페스트는 동유럽에서 자본주의 경제가 가장 먼저 도입된 곳이긴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보다도 경제적 여건이 조금은 낮기 때문에 거리에 지나다니는 차들도 낡고 작은 차들이 주종을 이룬다. 유럽의 온갖 소형 중고차들을 다 모아놓은 것만 같다. 새차라고 해봐야 대우의 마티즈 등등(초창기 디자인의 세피아도!)... 어쨌든 이런 낡은 차들에 휘발유도 질이 많이 떨어지는 듯, 차만 지나가면 매연에 거의 숨을 쉴 수가 없다. 게다가 좁은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며 걸어다니는 사람들. 그렇지 않아도 민감한 나의 후각은 부다페스트에서 정말 엄청난 고생을 했다.


낡고 작은 (게다가 고장난) 것들이 풍기는 고요한 아름다움에는, 저항할 수 조차 없다.

공예 박물관으로!


물론 취향이 다른 사람이라면 깜찍하고 깨끗한 일본 관광지 같은 그런 인위적인 아름다움을 좋아할 수도 있고, 또는 화려하고 웅장한 성당이나 국회의사당 같은 것들 좋아할 수도 있겠고, 혹은 건물 따위보다는 화려한 레스토랑이나 멋진 클럽 같은 '젊음을 불태울 수 있는' 장소를 좋아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여기, 부다페스트의 이 무심하고 지저분해서 우울하기까지 한 비오는 거리, 그 모든 낡아빠진 건물의 독특한 배색들이 좋았다. 이 거리들을 내 발로 하나하나 훑어 구경하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부러웠다.
어디를 가도 너무나 멋진 건물들을 보면서 나는 서울의 성냥갑같은 건물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고, 속이 상했다.

"이럴 리가 없어. 여기도 어딘가 관광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분명히 서울처럼 성냥갑 건물들이 있을거라구." (두리번 두리번...)
...
(없쟎아,,, ㅡ.ㅡ;)


이리저리 길을 물어(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아서 지도를 펴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물어본다) 찾아간 공예박물관에서는 낡은 피아노를 해체해 재조립한 'Pianos Found & Recreated'라는 전시회와 부다페스트의 어느 귀족 일가가 소장했던 공예품 전시가 열리고 있다.
공예박물관은 사실 전시품보다 건물 자체를 보러 간 것.
19세기 유럽을 휩쓴 화려하고도 유기적인 곡선과 섬세한 장식의 아르누보(비인에서는 제체시온) 물결이 여기 부다페스트에도 미쳤는데, 이 건물이 바로 그 결과물 중 하나이다.



국립 갤러리 : <초승달이 뜬 밤, 아테네의 마차 여행>


북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왕궁이 나온다. 이곳에는 헝가리 국립 갤러리와 국립 역사박물관이 있다. 국립 갤러리에서는 클림트, 에곤쉴레, 코코슈카 등을 중심으로 한 제체시온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왕궁은 무지 넓고, 티켓은 샀는데 전시관을 못찾아서 낙담하고 있자니... 박물관 직원 할머니가 다가온다.

"(포스터를 가리키며) 너네들 혹시 이거 보러 왔냐?"
"네, 맞아요 맞아요! 어디가면 볼 수 있는 거예요? 정말 모르겠다구요. ㅠ.ㅠ"
"나를 따라와라."

할머니를 쫄레쫄레 따라가니 온갖 관광객들이 거기 다 모여있네 :O
유럽 전역의 박물관과 공공시설 등을 관리하는 직원들은 80퍼센트가 할머니 할아버지다. 너무도 조용하고, 친절하고, 눈치 빠르고, 그리고... 영어는 잘 통하지 않는다 ㅡ.ㅡ; 전시회는 그다지 감흥이 없었지만, 멋진 그림을 발견했다.



눈길을 사로잡았던 이 낯선 화가에 대해 좀더 알아볼까.

Csontvary Kosztka (1853-1919).
41세(1894년)에 미술 공부를 시작해서 1903-1909년 사이의 짧은 기간에 얼마 안되는(약 100점의 유화와 20점의 드로잉) 작품을 남겼다... 42세에 풍경화를 그리기 위해 달마시아와 이태리로 여행을, 그리고 50세(1903년)에는 '위대한 모티브'를 찾기 위해 근동 지방으로 여행을 떠났다. 이 여행의 결과물이 극적이고도 표현적인 작품 "Great Tarpatak"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본 그림은 바로 이 시기에 그려진 것들이다.
그는 1907년 빠리에서 첫번째 전시회를 연 후 레바논으로 여행을 떠났다...1908년과 1910년에 다시 전시회를 열었지만 그가 열망했던 만큼의 관심을 얻지 못했고... 외로움과 사람들의 몰이해로 인해 그는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상태를 맞아, 이후로 거의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
(http://www.thehungarypage.com/filmartsandmedia2.htm에서 발췌)


예술가는 고독하다고 하지만, 위대한 예술가는 죽은 뒤에 인정받는다고 하지만, 사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에게있어서 누군가의 인정을 받는다거나 자부심을 가진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물론 누가 뭐라 해도 끄덕없는 대단한 자부심과 완고함을 타고난 듯한 거장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매우 소심하다.
Kosztka 할아버지, 100년 뒤에 동양에서 온 조그만 여자가 이 그림보고 감동먹을 줄 몰랐죠? 뭐 이젠 별로 상관없다고요? 어쨌거나 인생은 그런 거라고요... 너무 낙담하지 않았어도 되는 거였는데 말예요.


어부의 요새와 부다페스트의 밤거리


아.. 배가 너무도 고팠다. 겔레르트 언덕, 왕궁, 그리고 마차시 교회, 어부의 요새, 이런 관광지들이 온통 걸어서 돌아볼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 모여있는 도나우강 왼쪽편 부더(Buda) 지구. 말 그대로 여긴 그냥 '관광지'다. 도나우강 야경을 보려고 했는데 아직 해가 지지 않았기 때문에 주변의 예쁘장한 레스토랑들 중 Sisi라는 곳에서 저녁을 먹고 조금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어부의 요새가 있는 강변으로 나왔다.


해가 저문 어부의 요새에서는 아코디언 연주자가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을 열정적으로 연주하고 있었다. 어둡고 축축한 공기 속으로 퍼지는 웅장한 음색. 프로의 솜씨다. 아코디언에서 오케스트라의 느낌이 날 수 있다는 걸 나는 이날 처음 알았다 :0

"저런 솜씨로 왜 이 추운날 컴컴한 데서 동전 몇개 받아가면서 연주를 하냐? 말도 안되지 않아?"
" 아마 당국에서 시킨 거 아닐까? 아니면 저 아저씨, 부다페스트를 굉장히 사랑하는 대댠한 애국자일지도 모르지."
"어쨌거나 동전 좀 주자. 그래도 멋진 연주인데."
"안돼. 우리가 무슨 돈이 있냐. 당국에서 주겠지. 미안하니까 그만 듣고 가자."




* 이날은 사진이 너무 많아서, 고르다 보니 부다페스트의 유명하다는 유적이나 건물들 사진이 다 빠져버렸네요. 이런 것들에 대해서야 뭐 별로 할 얘기도 없고(사실 몇몇을 빼고는 관심도 없었고)... 그리고 그런 사진들은 관광 정보 사이트나 책에 보면 잘 나오니까... (앞으로도 기대하지 마시길...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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